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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끝일수도 있는...
얼마전, 집에서 키우던 듀크라는 강아지가 죽어버렸다.
그 강아지는 회색빛의 눈동자에 하얀색 털이 덥수룩했고 혈통은 폴리 종(種)이었다. 사인은 자연사, 그러니까 나이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개를 항상 강아지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사람처럼 늙어서 죽을 거라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었다. 평소에 유별나게 애정을 쏟았던 것도 아닌데 한동안은 나도 슬픔에 잠기어 매사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차피 끝날 거라면 그 강아지는, 또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왜 시작되어져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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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 대해서 당연히도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물음으로써 떠오르는 순간, 갑자기 막막해져 버렸다. 고독이란 당연히 혼자 있을때에만 가능하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중 속의 고독’ 도 있을 수 있고 신경숙이 외사촌과 상경해서 머물던, 37개의 단칸방들로 이루어진 건물 중에 창밖으로 수원행 전철이 지나가는모습이 보이는 방이 ‘외딴 방’ 일 수도 있다면, 고독은 무엇인가? 아직도 모른다. 그러나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지하철 역에서, 중앙도서관 열람실에서, 뭐라고 웃고 떠드는 사람들로 가득찬 술집 안에서 고독한 나를 본 적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소설은 다시 살려냈을는지 모르겠지만, 시대의 죽음은?
소설의 종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동유럽이나 라 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르시 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 밀란 쿤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