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 형벌제도
조선시대의 형벌은 고려와 마찬가지로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의 5형을 기본으로 하였으나, 도형, 유형과 같은 자유형이 확대되고 형구의 규격과 사용방법, 절차 등이 성문규정에 의하여 전국적인 통일을 기하였으며, 형률의 적용에 있어서 관리에 의한 자의를 방지하고 남형을 금지하기 위한 감독체제를 강화하였다. 즉, 행정과 사법이 엄격히 분리되지는 않았지만 인신을 구속할 수 있는 기관을 직수아문이라고 하여 경국대전 등에 명시하였고, 지방의 군, 현의 수령은 장형이하, 관찰사는 유형이하의 사건만을 처리하게 하고, 사형은 삼복제를 시행하여 국왕의 재결에 의해서만 집행할 수 있게 하였다. 형벌권의 남용에 대하여 엄중한 형사적 처벌을 가하고 각 지방에는 훈도 검률이라는 율사를 중앙에서 파견하여 관찰사의 사법업무를 보좌케 하였다. 모든 형사법전에는 휼수(휼수)의 규정을 두어 죄수의 인권보장을 위한 법적 제도를 마련하였으며, 역대 임금들은 인정의 상징으로서 휼형을 중시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 당쟁과 공리공론등 유교적 폐해에 젖어들면서 행형에 대한 법치질서도 문란해져 남형의 사례가 빈번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숙종, 영조, 정조임금 때에는 형정의 문란을 시정하라는 교서가 여러차례 반포되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지만 그 후 조선말기의 세도정치로 인한 정치의 부패, 특히 천주교 탄압으로 인하여 행형은 일반에게 더욱 가혹한 인상을 갖게 하고, 이는 조선의 행형제도 전부를 왜곡시키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