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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텍스트 변용을 통한 주제 구현; 춘원 역사소설의 초기 삼부작
1920년대에 발표된 춘원의 역사소설은 모두 다섯 편으로 줄곧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 첫 째는, 춘원에게 있어 동아일보의 의미가 대단히 소중했다는 점이다. 「민족개조론」으로 반발을 사게 되어 문필 활동의 장이 봉쇄되었을 때 그에게 돌파구를 열어준 것이 바로 동아일보였다. 1933년에 이르는 10년간 춘원은 제1의 민족지를 표방하던 동아일보를 무대로 하여 자신의 생각을 구현할 수 있었는데, 역사소설 역시도 그 일환이었다. 둘째로는 통속성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든 신문을 매체로 하면서 오히려 그 점을 십분 이용하였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순수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문학이 독자로부터 분리되어 가던 문학 상황을 바꾸고 사람들을 ‘文學線’까지 끌어올리는 ‘문화적 문학 운동’의 길로 춘원이 나서게 되었다는 김동인의 평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물론 ‘문학’을 정점으로 놓는 동인의 해석을 뒤집어서 문학을 민족운동의 방편으로 여겼던 춘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겠지만,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신문 연재 형식을 통하여 일반 독자와의 접촉을 보다 직접화한 사실이다.
첫 작품 「가실」부터 이상의 두 가지 사실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김윤식의 지적대로 이 작품은 상해에서 귀국하여 「민족개조론」으로 물의를 일으킨 후 칩거하던 작가의 처지와 관련해서 의미 있게 읽을 수 있다. 「가실」에서 주목할 점은 ꡔ삼국사기ꡕ에 실려 있는 ‘설씨녀 설화’와 비교했을 때 확인되는 변용의 측면이다. 세 가지를 지적할 수 있는데, 설씨녀가 아니라 가실이…
첫 작품 「가실」부터 이상의 두 가지 사실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김윤식의 지적대로 이 작품은 상해에서 귀국하여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