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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딤 혹은 둥근 시간의 물살』― 김명인의 시세계
이미 여러 평자들이 지적한 바처럼, 김명인의 시세계는 고향 바다(물)가 원형적인 생성 질료를 이룬다. 그의 시편에서 바다의 풍경은 대체로 ‘비·안개·는개·가난·외로움·기다림’등의 불투명하고 하강적인 이미저리에 에워싸이면서 막막하고 음울하고 고적한 색조를 띤다. “고아 의식”(김현)으로 명명되기도 하는, 절대적인 소외와 궁핍 속에서 보냈던 그의 유년 시절의 세월의 침전물인 바다의 색체가 여섯 권의 시집을 간행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그의 시세계 전반의 분위기가 가볍고 밝고 환한 느낌보다 무겁고 어둡도 적막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요소이다. 실제로 그의 시세계에서 삶의 거점을 이동하는 ‘길’의 이미지는 시적 전개 과정의 가장 중심적인 기본 골격을 이룬다. 그가 부단히 떠나는 ‘길’의 행로는 고향 울진을 중심축으로 하는 원체험의 정서적 동심원을 확장시크는 일에 다름아니다. 이러한 점은 그가 체험한 세게의 본원적인 실재가 고향 바다의 속성과 근원 동일성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명인의 여섯 번째 시집『길의 침묵』의 가장 특징적인 미의식이 놓이는 자리가 여기이다. 모든 ‘길’에는 외부 세계가 강요하는 시련, 고난, 상심의 바람이 내재되어 있음을 전언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주목해야 할 문제는 이 사실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강물”에 있다는 점이다. “긴 골목길”을 가득 채운 강물은 고향 바다의 전위이다. 고향 바다가 현존재자의 삶을 직시하게 한 것이다. 유년기의 처연한 우수와 생의 불안이 중년이 되고 생활 안정을 찾은 ‘지금, 여기’에 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