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신돈은 이처럼 화엄종 계열에 가까운 승려였다. 그런데 그는 보우에 의해 사승(邪僧)으로 몰렸다. 보우가 공민왕에게 신돈에 대해 논하면서, 나라가 다스려지면 진승(眞僧)이 뜻을 얻게 되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사승(邪僧)이 때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왕께서 잘 살피시어 신돈을 멀리하시면 종사(宗社)에 다행함을 얻을까 합니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신돈과 보우가 단순히 종파만 달랐다면, 보우가 신돈을 이렇게까지 부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신돈은 왜 보우로부터 이러한 평가를 받았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사상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서로 다른 신돈과 보우의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보우는 공민왕의 왕사가 되어 원융부(圓融府)를 세우고 선·교 종문 사사(寺社)의 주지 임명을 마음대로 했던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공민왕의 친모인 명덕태후(明德太后: ?~1380)와 같은 남양 홍씨 가문의 사람이었다. 보우가 권문세족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고, 일찍부터 불교계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반면, 신돈은 어머니가 미천하였기 때문에 그 무리에 참여하지 못하고 항상 산방(山房)에 거처하였다고 한다. 신돈이 자신의 미천한 신분 때문에 그 무리들과 어울리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신돈이 보우와 달리 권문세족 중심의 불교계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따라서 보우가 신돈을 사승으로 깎아 내린 것은 신돈이 자신의 입장과 그 출신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돈은 이처럼 권문세족 중심의 불교 세력과 입장을 달리한 인물이었다. 그가 집권한 뒤 보우를 왕사의 자리에서 축출했던 것도 이러한 사정과 관련이 있었다. 보우가 권문세족 중심인 당시의 불교계를 대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신돈에 의해 국사로 추대된 천희가 권문세족과 거리가 먼 지방 출신이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