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수를 놓는다’라는 작업은 그 자체로 전통적인 여성스러움을 물씬 풍기게 만드는 소재가 된다. 게다가 그 수틀이 오래된 것이니, 독자는 처음부터 세월 속에 조용히 묻혀 간, 아늑하고 평온한 아낙네의 모습을 떠올리며 시를 읽게 된다. 이에 시인은
누군가 나를 수놓다가 사라져버렸다
라는 말로 운을 떼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화자가 능동적으로 수를 놓아 만드는 존재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서 ‘수를 놓아지는’ 수동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수를 놓는 그 ‘누군가’가 손을 놓으면 놓는대로, 바늘을 움직이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는, 그러한 운명. 한데, 그 화자를 수 놓고 있던 누군가가 사라지고 말았다. 화자는 그 자리에 멈춘 채 자신을 수 놓을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연에서
씨앗들은 싹을 틔우지 않았고
꽃들은 오랜 목마름에도 시들지 않았다
파도는 일렁이나 넘쳐흐르지 않았고
구름은 더 가벼워지지도 무거워지지도 않았다
라고 말한 것이다. 씨앗들은 싹을 틔우고 싶어한다. 우리는 싹이 트는 씨앗을 바라보며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느낀다. 하지만 그 다음 행에서는 꽃들이 시들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화자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여기는 생명력 뿐만이 아니라 그 소멸까지도 멈춘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생은 탄생하여 만발하고 소멸되는 과정을 겪으며 진정으로 완성된다. 싹을 틔웠으면 소멸해야 하는 것이 세상이 이치이기 때문에, 화자는 꽃이 시들지 않는 것 마저도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다. 파도와 구름 역시, 넘쳐 흐르는 것 또한, 가볍고 무거워지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이 모든 것이 아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