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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마을은 전국 매화나무 집단재배를 처음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매화명인 홍쌍리(59)씨의 열정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처음 농원을 일구기 시작한 이는 홍씨의 시아버지 김오천씨이다. 일제시대 일본에서 광부생활을 하던 김씨가 돌아와, 밤나무와 매화나무를 심으면서부터 시작됐다. 그게 80여년 전이다. 그 뒤 홍씨가 매화묘목을 늘리고 종자도 개량,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매화일가를 이루게 된 것이다. “매화는 나의 딸, 매실은 나의 아들” 이 말 속에서 홍쌍리씨의 열정과 그 열정이 이 마을을 이렇게 크게 번성 시킬 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 된다.
예부터 매화는 사군자의 하나로써 지조를 나타낸다. 설중매라는 말이 있듯이 매화는 설한풍 속에서 맑은 향기를 풍기는 고고한 품격으로서 봄을 알린다하여 예부터 많이 인용 되어 왔다. 그럼으로 이육사는 일제의 치욕적인 탄압 속에서도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싸우면서 매향을 잃지 않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매화는 운치 있고 품격이 있어 고상하다.’ 라고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나와 있다. 그러나 매화 마을의 화려한 풍경을 보고서는 매화가 고상하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한두 그루의 매화나무를 볼 때면 모를까, 셀 수 없이 많은 매화나무에 핀 꽃이 바람을 받아 한꺼번에 흔들리는 모습을 본다면 그것에 감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넒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섬진강 모래톱만큼이나 하얀 시멘트길이 구불구불 곡선을 그리며 백운산을 오른다. 길은 온통 매화밭이다. 매화나무 아래 풀숲은 쑥 냉이 등의 봄나물과 이름 모를 들풀로 싱그럽다. 손을 담그면 초록물이 든다는 표현은 이런 때 쓰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