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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의 시와 기형도 시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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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의 시와 기형도 시의 비교에 대한 글입니다.

이규보시와기형도시의비교

본문/내용

이 때에 이규보는 운문산에 주둔하면서 난적들을 무찌르기에 온갖 정열을 다 바쳤다. 도통상서부사시랑(도통상서부사시랑)에게 서(서)를 올려 전사한 장졸들의 명복을 빌어주고, 또한 논공행상을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상부에서는 이 글을 받자, 이규보의 애민과 논리 정연함에 감복되어, 각 부대에 쌀을 보내 전사자들의 명복을 빌게 하고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이로써, 난적들이 들끓는 와중에도 천륜을 다하고 인륜을 다하여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그의 소망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204년(신종7) 경상도의 반란군을 진압하고 개선을 했으나 논공행상에서 이규보는 제외되었다. 그는 외직하나 얻지 못해, 불우한 신세를 한탄하며 문을 닫아걸고 출입도 하지 않았다. 최충헌은 다른 무신들과는 달리 문사들을 좋아하여, 기회만 있으면 문인들을 불러 시연(시연)을 베풀고 문사들을 후히 대접하였다. 당시의 쟁쟁한 문사들이 다 모인자리에서 <진강후모정기(진강후모정기)>가 최우수작품으로 뽑히어 현판에 새겨 걸어 놓는 최대의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12월에 이규보는 직한림원(직한림원)에 권보(권보)되었다. 그동안 바라던 벼슬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벼슬은 날로 높아져, 50세에는 우사간지제고(우사간지제고)가 되고 문관으로 최대의 영예인 자금어대(자금어대)를 하사 받았다. 그리고 다시 다음해인 51세에는 좌사간(좌사간)이 되었다. 하지만 52세 되던 1219년(고종 6)에 팔관하표(팔관하표)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였다고 탄핵되어 외직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경기도 계양(계양)의 도호부사병마금할(도호부사병마 할)이 되어 계양으로 부임하였다. 서울의 생활에 비하면, 시골의 생활이라 보잘 것이 없었지만, 그는 스스로 ‘자오(자오)’라 이름 짓고,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며 노력하였다. 그는 계양에 있으면서 최우에게 죄를 풀어주기를 비는 시를 지어 바쳤다. 그때는 이미 그를 귀양살이 보낸 최충헌이 죽은 다음해의 일로, 국원을 최충헌에 이어 최우가 잡고 있던 때이다.

참고문헌

김상훈 ·류희정, 『이규보작품집』, 문예출판사, 1990.
김상훈 ·류희정, 『이규보작품집(2)』, 문예출판사, 1990.
신용호,『이규보의 의식세계와 문학론연구』, 국학자료원, 1990.
이동철, 『이규보 · 임춘 시의 연구』, 형설출판사, 1994.
이종찬, 『한국한시대관』, 이회문화사, 1998.
전형대,『 이규보의 삶과 문학 』, 홍성사, 1983
인터넷 자료:http://binzip.bcpark.net/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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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 : kwgs*****
Date : 2015-01-02
FileNo : 1611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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