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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실증주의 정신은 과거의 법치주의에 대한 해석에서도 드러난다. 법치주의 국가의 초기단계는 대부분 절대왕권을 법으로 대체시키는 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 자의대로 집행하던 과거와는 달리 엄격한 법을 기준으로 세울 필요가 있었다. 사소한 예외를 허용해 주다가는 법이라고 하는 확실한 잣대를 구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법의 안정성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로, 법의 대표적인 3가지 목적에도 속하는 것이다. 법이 미리 정해져 있던 대로 적용되지 않거나, 정해진 절차를 따르지 않고 쉽게 변할 수 있다면, 국민들은 법으로 안정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다. 결국 국민들은 법의 권위에 불복하고, 법치주의도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초기의 법치주의는 문자 그대로, 일단 법이라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법이 개별적인 상황에서 공정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는 문제의 핵심이 되지 못했다. 이런 최초의 법치주의 성격은 형식주의 에서도 나타난다. 차이가 있다면 법 실증주의 는 시대적 배경과 상관없이 문자 그대로의 법 해석을 중시한다는 것이고, 초기 법치주의는 법 실증주의적 해석이 낳을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한 시대적 배경의 한계라고 말할 수 있다.
나치의 합법적 통치와 로흐너 판례4는 초기 법치주의의 오류를 명백히 드러낸다. 나치당은 원래 히틀러에 의해 결성된 소수의 극단적 민족주의 성격의 집단이었다. 히틀러는 유태인들보다 자신들 민족이 훌륭하다고 믿었고, 유태인들은 단지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쓸모 없는 인종이라 여겼다. 히틀러가 집권을 하게 되자, 나치는 다수당이 되어 유태인 차별을 합법적으로 행했다. 2차 대전 후 나치에 의한 합법적 횡포로 인해 실질적 법치주의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법을 유연화시키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법 해석에 매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것이 법의 권위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현실적인 기준 확립의 어려움 때문이다.
참고문헌
1. W. 바레트, 비합리와 비합리적 인간, 서울 : 예전사, 2001.
2. 박선영, 법학개론, 서울 : 동현출판사, 2004.
3.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서울:휴머니스트, 2003.
4. 이명웅, “헌법재판에서의 사실인식의 문제”, 2000.
5. Lochner v., “People of State of New York”, 198 US 45,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