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삼국시대 이래 한국과 중국과의 외교관계는 조공(朝貢)외교를 특징으로 하는데, 삼국시대 초기인 기원 후 1세기부터 조선시대 말기인 갑오개혁(1894)때까지 약 2,000년 동안 지속되었다. 한국 측에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어찌 보면 굴욕적이라고 할 조공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해온 것은 정권유지의 안전판 역할을 중국 측에게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공녀(貢女) 문제도 결국은 조공관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공녀란 중국의 요구에 따라 보내어진 한국의 여자, 특히 처녀들을 뜻하는 것으로써 일종의 특수공물이었기 때문이다.
(2) 공녀 요구의 목적
① 원나라 때
첫째-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고도의 복속정책
(부녀자의 강탈을 통하여 고려인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끊임없이 공녀를 요구함으로써 외교적으로 탄압을 가하는 한편, 더 나아가 고려인들을 그들의 정신적인 노예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다.)
둘째- 원나라의 부녀자 부족에 따른 황실 궁녀의 조달
셋째- 미모가 뛰어난 고려 여인들에 대한 몽고인의 성적 야욕의 충족
② 명나라 때
첫째- 황제의 시중을 드는 궁녀의 조달
둘째- 황제의 식사 장만이나 유희를 …
참고문헌
정구선, 중국으로 끌려간 우리 여인들의 역사 - 공녀, 국학자료원, 2002년
노회찬, 어,그래? 조선왕조실록, 일빛,199쪽
신봉승, 신봉승의 조선사 나들이, 답게, 1996년 251~252쪽
네이버뉴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OD&office_id=048&article_id=0000123711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OD&office_id=028&article_id=0000095345
http://kin.naver.com/open100/entry.php?eid=lF6fYfUI8Mc5Jzfx5F4q7UcuWDwgy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