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열자라는 사람은 `장자(莊子)`에 여러 차례 나오는데 어떤 경우엔 그를 높여 자열자(子列子)라 부르고 또한 `열어구(列禦寇)`편이 따로 있다. `어구(禦寇)`는 `어구(御寇)` 혹은 `어구(圄寇)`라고도 한다. 禦, 御, 圄 세 글자는 옛음이 모두 같아 자연히 가차음으로 통한다. 이 사람은 실제 인물인데 그를 언급하는 곳이 `장자`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자, 소요유`편에 열자를 신선으로 묘사하고 있다.
`열자는 바람을 타고 다니니 가뿐하고 좋다. 15일이 지나서야 비로소 돌아온다.`
그러나 같은 `장자`의 `양왕`편에는
`子列子가 궁핍하여 굶주린 낯빛을 하고 있었다.`
곧 보통사람과 똑같이 먹고 마셔야 사는 사람이다. 먹고 마시는 것이 부족하면 얼굴이 노래지고 몸이 야위게 된다. 이러한 모순된 상황은 결코 `장자` 전체 글이 한 사람에 의해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장주가 실제 존재하는 인물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장자, 천하`편의 `다른 것을 빌려 비유한 말(寓言)을 써서 세상에 널리 알리다.`, `우언`편의 `(내가 이야기 속에 쓰는)우언은 열 가운데서 아홉이다.` 와 같이 `장자` 가운데 실제 인물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사례는 매우 많은데, 열자는 그 중 하나일 뿐이다. 열자를 신격화한 것은 아마도 열자가 비록 도를 터득한 선비로서 아무 것도 의지하지 않고 날 수 있지만 여전히 바람에 의지하고 있으니 이는 결코 진정으로 `소요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자 함일 것이다.
열자의 학설은 장자에 가깝지만 당시의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자, 천하`편에 묵적, 송연, 윤문, 전병, 신도, 혜시 등은 평가하고, 관윤, 노담을 찬미하고 장주 자신에 대해서도 서술하였지만 열어구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자…
열자의 학설은 장자에 가깝지만 당시의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장자, 천하`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