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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을 어린 시절 보았을 때 당연히 이상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상당히 지저분한 영화 배경이라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었다. 사람인지 아닌지도 구별하기 어려운 범인이 사는 곳과 정신이상자 의사가 매우 지능적인 사람들을 조종한다는 모습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당시에는 이러한 생각도 없이, 그냥 영화 자체가 신기했기 때문에 보았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양들의 침묵처럼 무서웠던 다른 영화는 ‘캔디맨’이었는데, 캔디맨은 단순한 공포를 주었다. 그러한 점에서 양들의 침묵은 보다 사실적이고 줄거리의 구성이 탄탄하다. 또한 배경이나 물건에 담긴 의미가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신이상자의 말을 믿으면서 수사하는 정상인, 정신이상자가 더욱 정확한 판단을 하는 세상일 수도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미국적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설정되는 집념형 인간과 정의형 인간은 양들의 침묵에서도 어김없이 진가를 발휘한다. 이러한 영화 구성을 통하여 각종 상을 석권하였고, 지금도 수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장미의 이름이라는 영화와 비슷하게 추리형 스릴러물인 양들의 침묵은 현대판 장미의 이름이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제작자의 의도와 깊이는 다르지만, 전반적인 구성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다른 스릴러물과 차별을 둘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된다.
양들의 침묵에서 ‘양’이라는 존재는 약자,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더욱 넓게 본다면 아무런 힘없는 사람들의 침묵이라고 역설할 수 있는 것이다. 양을 죽이는 살인자에 대한 무능력을 보여주고, 단신의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이 살인자를 처단한다는 것은 영웅주의적 가치관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스타트랙, 스타워즈 등과 같은 영화에서도 주인공이 설정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살펴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