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들어가는 말
梅泉 黃玹(1855~1910)이 살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안으로 중세 봉건사회의 질서가 해체됨에 유가이념의 절대적 권위가 무너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밖으로 열강의 동점(東漸)으로 위기의식이 고조되어가던 급격한 변동기였다. 그때 매천은 당대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척사(斥邪)와 개화(開化) 중의 한 입장을 표명하고 각기 다른 길을 선택했던 것과는 달리 뚜렷이 자신의 견해를 행동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직접 의병활동에 참여하지도, 어떤 계몽운동에 관여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 치열한 저항정신을 지니고 있었으며, 결국 순절(殉節)로 자신의 뜻을 나타냈다. 우리는 매천의 이런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당대 역사의 정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지식인(知識人)들의 사명감을 가지고 내적 충실을 다졌던 많은 지식인으로써 민족정신(民族精神)을 우국시(憂國詩)를 통해 표출하였다. 민병수는 “그는 1800년대 후반에서부터 1910년에 이르는 구한말의 격동기에 처하여 가장 많은 우국시를 남기고 간 당시 문단의 대표적이 시인의 한사람이다.”고 한 것처럼 한문학을 대표했던 시인이자 민족시인…
참고문헌
황수정, 「매천 황현 시에 나타난 실행성」, 한국고시가문학회 2004
장선희,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애국시(愛國詩) 연구」, 한국고시가문학회 1993
윤경희, 「황현의(黃玹) 세계관과 시세계(詩世界)」,한국한문학회 1991
장선희. 정경운 「호남문학의 기행」,박이정 2000
임형택, 「황매천(黃梅泉)의 시인의식(詩人意識)과 시(詩)」, 창작과 비평 19호,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