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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들러의 중립화안은 조선정부에 의해 거부되었고 유길준의 중립론은 갑신정변 실패 후 수구파가 집권함으로써 끝내 햇빛을 보지 못했다. 김옥균의 중립화안은 일본에서 일방적으로 공개되었으나 반응을 얻지 못하다가 뒷날 청국에 갔던 그가 암살되고 곧 청일전쟁이 발발하여 더 이상 거론되지 못했다.
나. 동학 농민 운동
1. 농민 전쟁의 배경
문호개방 이전의 조선사회에서도 중세적 통치체제의 모순에 저항하는 민란을 꾸준히 일어나고 있었다. 19세기 중엽의 임술민란에서와 같이 민란은 국지성과 분산성을 넘어서지 못했으면서도 전국 각지로 확산되어갔다. 그러나 문호개방 전에는 대규모 농민전쟁으로 발전할 만큼 역사적 조건이 아직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나 민란으로만 그쳤다.
그 원인은 몇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농민층의 정치‧사회적 의식수준 자체가 이 시기의 정치‧경제‧사회적 모순을 구조적이고 체제적인 모순으로 파악하는 단계에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탐관오리의 개인적 부정부패나 양반토호층의 부분적 토색질로만 파악하는 데 그쳤기 때문에, 그것의 일시적 제거만을 겨냥한 민란으로…
참고문헌
• 한국사11/ 1994/한길사
• 국사下/ 국사편찬위원회/1996/교육부
• 고쳐 쓴 한국근대사/ 강만길//1994/창작과 비평사
• 한국역사연구회/한국역사/1992/역사비평사
• 한영우/다시 찾는 우리역사/1997경세원
•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상, 하 국사편찬위원회 1998
• 교실밖의 국사여행 역사학 연구소 지음 사계절 출판사 1993
• 시민을 위한 한국역사 창작과 비평사 1997
• 역사신문 제5권 사계절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