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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를 보면 당시 전국에는 525개의 역이 있고, 이 역들은 22역도(驛道)로 묶여져 있었다. 이러한 역도는 지금은 국도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22개의 역도중 8개는 수도인 개경 북쪽에 있었고 그 남쪽에 14개가 있었다.
우선 개경에서 황해도 방면으로 가는 길은 서해안을 따라 배천-연안-해주를 거치는 산예도가 있고, 내륙으로는 금천을 지나 평산-신계-곡산에 이르는 금교도가 있다. 그리고 철원-금화-평강-회양을 잇는 도원도가 있다. 이 길로 쭉 지나면 철령을 지나 금강산이나 원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개경에서 서경(평양)으로 가는 길은 금교도와 절령도이다. 금교도의 평산에서 서흥을 지나 자비령을 넘다 보면 평양 남쪽의 절령도와 만나게 된다. 절령도는 황주와 봉산, 재령과 수안을 거쳐 평양까지 가는 길이다. 연안지역에서 내뻗은 산예도에서 황주를 지나 평양에 이르는 길이 공식적으로 채택되지 않은 이유는 개경에서 직접 배를 타고 평양에 갈수 있었던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평양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여러 길이 홍교도이다. 홍교도의 한 방면은 평양에서 서남방향으로 강서를 지나 용강에 이르는 길이고, 다른 한 방면은 숙천-안주-박천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을 연이어 당시 국경지대인 의주방면을 중심으로 뻗은 길을 홍화도라 하고, 평북 내륙지방으로 이어진 길을 운중도라 한다. 홍화도는 안북도호부가 있던 안주 북쪽지역인 선천-철산-의주까지 이어지는 길이 중심이 되었고, 운종도는 안주 동쪽인 영변-개천-맹산 등지를 일컫는 길이다. 이 지역의 길이 세밀하게 파악된 것은 국방상의 이유가 컷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