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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은 보통 한 개의 촌락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토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영주들 중에서는 이러한 장원을 최소 한 개 또는 최대 수십, 수백 개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장원은 자급자족적 경제 단위의 촌락 공동체로서 그 중심부에는 영주의 성과 교회, 방앗간, 대장간 등과 같은 각종 시설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 외에 일반 농민들의 거주지와 목초지 역시 장원의 안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또한 토지는 영주 직영지, 농민 보유지, 공유지로 분류되어 경작되어지고 있었다. 중세시대의 장원의 모습은 현대의 작은 촌락과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