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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는 남한 강변 봉미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천년 고찰로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 후 고려 우왕 때 나옹선사가 돌아가신 곳으로 유명하며 조선시대에는 세종의 능이 인근으로 이장되면서 왕실의 원찰로 성장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500여 승군이 왜군과 대적해 싸웠으나 극락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이 불에 타고 말았다. 오늘날의 신륵사는 현종 12년 무렵부터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라 한다.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ꡒ미륵(혜근을 가리킴)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를 막았다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ꡒ고려 고종 때 건넛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ꡓ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 때부터 벽절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내의 동대 위에 있는 다층전탑을 벽돌로 쌓은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http://www.silleuksa.org/introduction/main_02.htm
이 절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 보물 제225호인 다층석탑, 보물 제226호인 다층전탑, 보물 제228호인 보제존자석종, 보물 제229호인 보제존자 석종비, 보물 제230호인 대장각기비, 보물 제231호인 석등이 있으며, 유형문화재로는 극락보전과 그 이외의 부속 건물로 구룡루, 명부전, 시왕전, 산신당, 육각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