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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는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변화가 나타난 시기이다. 전기의 농업 중심의 자급 자족 경제 단계에서 벗어나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그에 따라 지주 전호제를 바탕으로 한 양반 중심의 신분제도 역시 변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지배층은 성리학적 질서를 강화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확고히 하려 했을 뿐 이러한 사회 변화의 움직임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성리학은 ‘이와 기’라는 형이상학적 주제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현실과 괴리가 있었을 뿐 아니라,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하여 양반과 상민의구별의 엄격성, 상업이나 기술학은 양반들이 할 일이 아니라 하여 천시하였다. 세계관도 화이사상에 입각하여 중국을 천하의 중심에 두고 조선은 소중화로서 중국에 버금가는 나라로 여기고 있었으며 나머지 나라들은 오랑캐로 인식하여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런 경직된 성리학에 대한 반발은 실학의 연구로 나타난다. 실학의 발달과 함께 우리의 역사,지리,언어 등에 관한 국학의 연구가 활발해졌다. 한편 역사연구방법에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자국사(自國史)에 대한 관심, 다양한 서체의 등장, 역사지리학풍, 고증의 중시, 역사학자들의 현실개혁에 대한 논의는 새로운 역사서를 강요하였다. 이에 다양한 역사서들이 출간되어졌다. 홍여하의『東國通鑑提綱』,유계의『麗史提綱』,임상덕의『東史會綱』,한백겸의『東國地理誌』,신경준의『疆界考』유형원의『東國輿地志』,『磻溪隨錄』이익의『星湖僿說』등이 편찬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통성에 입각하고, 고증을 통한 사실주의적인 역사인식을 가진 안정복과 역사상 최초로 발해사를 체계화 하고자 했던 유득공의 업적을 알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