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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교사서의 왜곡이 국제 문제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0년대로 접어들어 일본 역사 교과서의 좌파적 오염의 문제가 점차 확대되면서 일본 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게 될 정도로 심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당시의 집권 세력은 교과서 검정 제도와 교과서 조사관의 권한 강화에 의한 官權 干涉으로 역사 교과서 통제에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통제 강화에 대한 반발로 32년의 세월이 걸리게 되는 「家永三郞 敎科書 裁判」소송이 제기되어, 일본 역사 교과서의 문제가 세계에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에 대한 관권의 통제는 날로 강화되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벗어난 왜곡과 은폐를 강요하는 단계로까지 도를 넘어서게 되니, 국내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격렬한 국제 파동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 파동이 1982년 역사적 왜곡의 문제를 가지고 폭발한 “일본 역사 교과서 국제 파동”이다. 분노한 세계의 항의, 특히 모욕적인 왜곡의 대상이 되었던 중국과 우리 나라의 거센 항의와 요구에 일본 정부는 1982년 8월에 정부의 사죄 성명과 함께, 정부 책임으로 교과서 기록을 시정할 것이라는 관방장관의 담화 발표로 일단 문제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