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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실이 불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이유는 4-6세기의 사회적 변동과 관련이 깊다. 4-6세기 농업생산력의 발달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계층분화가 이루어지면서 점차 해체되어가던 읍락공동체를 직접 지배하에 두기 위해 지방관을 파견하여 백성을 통치함으로써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왕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신앙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입장에 있던 귀족들로서는 전통신앙에 대치되는 불교의 공인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이차돈의 순교설화에 잘 나타나 있다. 불교의 수용을 용이하게 한 사상은 무엇보다도 ‘업설’이었는데, 그것은 인간의 의지적 행위인 업에 따라 자연의 필연적 반응인 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 후에 다시 태어나는 것도 살아 있을 때의 행위에 따라 6도의 차별이 생긴다. 인과응보의 업설은 자연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무교’의 세계관과 달리, 인간의 주체적 의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입장의 표명이었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현실에서의 신분 및 생활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던 ‘계세사상’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공덕을 쌓음으로써 사회적 차별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여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게 했다. 또한 현실에서 누리는 복과 괴로움이 전생에서 자신이 행한 행위에 대한 인과응보라고 설명되므로 왕과 귀족층이 누리는 특권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따라서 초기에 불교의 공인을 반대하던 귀족층에 의해서도 적극적으로 불교가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