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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둘째 왕자이며 어머니는 궁녀 출신(선희궁)의 후궁 영빈 이씨이다. 이름은 ‘너그럽다’의 뜻으로 ‘선(愃)’이고, 자는 ‘윤관’이며 호는 ‘의재’이다.
이복형인 효장세자(孝章世子)가 일찍 죽고, 영조(英祖)나이 40세가 넘어서 사도세자가 출생한 탓으로 2세 때 왕세자로 책봉된다. 그는 어린 시절 부왕의 자애를 입지 못하고, 핏덩이 2살배기 시절 서둘러 원손으로 정해져 생모인 선희궁의 품을 떠나 멀리 떨어진 전각에서 궁인들의 손에 보육 시켜 졌다.
3세 때 이미 부왕과 대신들 앞에서 「효경」을 외고, 7세 때 「동몽 선습」을 떼었다. 또한 글씨를 좋아해서 수시로 분자를 지어서 대신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8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지금도 성균관 대학의 입구에는 입학을 기념으로 세운 탕평비가 있다. 10세 때 세자빈으로 책봉된 홍봉한의 딸과 혼인하여 곧 별궁에 거처하였다.
그는 장난감 무기를 가지고 전쟁 놀이를 즐겨할 만큼 어려서부터 풍부한 무사적 기질을 보였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배우지 않고도 글씨와 그림에 뛰어 났다는 부왕을 닮아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자라면서 칼쓰기와 활쏘기를 위시한 기예에 특히 뛰어났고, 유교 경전보다는 점복을 비롯한 잡서들을 즐겨 읽곤 했다. 부왕의 성격에 눌려서 지내서인지 소심한 측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스갯소리를 곧잘 한 것으로 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