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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을 다른 말로 성관(姓貫)이라 한다. 오늘날과 달리 고려 초에는 성관과 본관이 꼭 일치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고려 초기 국가가 각 지역을 파악하면서 적(籍)을 작성해 나갈 때, 해당 지역을 본관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조선 초기 지리지 등에 기록되어 있는 각 지역의 토성(土姓)은 해당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유력한 세력의 성관을 표시한 것으로, 토성은 본관과 성관이 일치한다.
태조 왕건은 태조 23년(941)에 세 가지 중요한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는 통합 전쟁 후 곧바로 지역간 ■ 계급 간 대립과 갈등의 후유증을 치유하여 명실상부한 민족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한 제도적 조치이다. 그 첫 번째 정책은 각 지역을 장악하여 그 지역의 토지와 민의 적을 작성하고, 그 지역의 유력한 세력에게 성씨를 부여함으로써 지방사회를 국가의 지배질서 속에 편제시킨 토성분정(土城分定) 정책이 그것이다. 두 번째 정책은 전시과 고려시대의 토지 제도. 문무 백관에서 한인(閑人)에 이르기까지 국가 관직에 복무하거나 또는 직역(職役)을 부담하는 자들에 대하여 그 지위에 따라 응분의 전토와 시지를 지급하는 제도이다. 976년(경종 1년)에 시작.
제도의 원형인 역분전(役分田)제도로 국가에 대한 충성도, 건국에 협력한 지방 세력의 크기, 즉 지방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뜻하는 인품(人品)에 따라 토지를 지급하였다. 세 번째 정책은 교통의 요지나 전략적 거점, 지역적인 생산력 그리고 지방 세력의 비중에 따라 군현의 격을 정하고 군현 명칭을 개정하는 군현 개편을 단행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