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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은 조선의 수도 한양과 함께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의 경주에서 고려 개경으로의 변동은 수도가 한반도 중앙부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도의 위치만 보더라도 고려와 조선은 초기부터 한반도 통일정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음을 알 수 있다. 개경은 예성강과 임진강 사이에 자리하고 남쪽으로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한 강화도의 북쪽 해안과 접해 있다. 기후는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이나,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온화한 편이다. 산세를 살펴보면 개경 외부의 산맥들은 험준하지만 개경 부근에 이르러서는 산세의 험준함이 줄어 대체로 얕은 산 위주의 구릉지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들이 낮기는 하지만 주위를 빙 두르고 있어, 개경은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분지 지세이다. 산세에 비해 용수(用水)는 부족한 편이다. 개경의 남쪽 지구는 음료수원으로 상수도 시설을 갖추기 전까지는 우물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개경은 개성(開城)· 송악(松嶽)· 송도(松都)· 중경(中京)· 황도(皇都)· 왕경(王京)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이중 개경 못지않게 가장 일반적인 명칭이 송악· 송도· 송경이다. 이는 개경 바로 뒤에 있는 산이라고 하는 송악산에서 나온 것이다. 송악산의 본래 이름은 부소산이다. 그런데 신라의 풍수가였던 팔원이라는 사람이 부소산의 형세를 보고 태조 왕건의 4대조인 강충을 찾아와 부소군을 부소산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옮기고 헐벗은 산에 소나무를 심어서 산의 암석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면 삼한을 통일한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강충은 풍수가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송악산이라는 명칭이나, 개경을 흔히 송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고려시대에는 자연조건이 풍수적 사고와 쉽게 결합하였다. 그것은 고려시대 사람들의 의식에 풍수지리적 사고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