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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이 핵보유 사실을 시인함으로써 현재 한반도는 전쟁의 고조 속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이러한 상황은 1993~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와 대단히 유사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실정이다.
1차 북핵 위기는 1993년 3월12일 북한이 NPT(핵확산방지 조약)을 탈퇴함으로써 시작됐다. 이 갈등은 그러나 그 해 6월 뉴욕에서 강석주-갈루치의 회담을 통해 북한이 NPT탈퇴를 보류하고 북핵 문제의 정치적-평화적 해결 원칙에 동의함으로써 일단 파국은 피했다. 하지만 그 후 협상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북한은‘정치적 일괄 타결’을 요구한 반면, 미국은‘선(先) NPT복귀’를 요구함으로써 견해차를 드러냈다. 특히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 과정에 미국 내 강온 대립이 노출돼, 국무부는 북측 요구의 일부 수용을 주장한 반면 국방부는 대북 제재와 군사 대응을 주장했다. 이 같은 미국 내 대립 과정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남한이 배제된 ‘북-미 직접 대화’ 및 ‘정치적 일괄 타결’에 강력히 반대함으로써 미국 내 매파의 발언권을 결정적으로 강화시켜 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 후 진통을 거듭하면서도 진행되던 북-미 협상은 1994년 2월 미국 방부가 주한 미군과 국군이 전시 작전계획인 ‘OPLAN 5027`을 발표하면서 긴장 국면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 계획 후반부에 북한의 주요 전력 격멸, 대규모 상륙 작전, 평양 고립화, 점령 지역의 군사 통치 등 북한을 자극하는 예민한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남북 특사 교환을 위한 판문점 실무 접촉 이틀 전인 3월 17일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NHK방송과의 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국제 제재의 불…
그 후 진통을 거듭하면서도 진행되던 북-미 협상은 1994년 2월 미국 방부가 주한 미군과 국군이 전시 작전계획인 ‘OPLAN 5027`을 발표하면서 긴장 국면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