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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약국의 딸들」이 지닌 그 비극적인 내용은, 아직 나이가 어리고 감성이 여린 탓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당시의 내겐 감정의 정화보다는 오히려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안겨주었으며, 그 두려움은 아주 엉뚱한 방향에서 나를 사로잡곤 하였다.
그 무렵 나는 동급생의 여자애 하나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누이의 그것과 꼭 같은 분위기를 가진 여학생이었는데, 문제(?)는 그가 읍내에 있는 김약국집 딸이라는 사실에 있었다. 그애를 볼 때마다 「김약국의 딸들」이 처한 그 비극적인 운명이 생각나고, 내 누이의 쓸쓸하던 모습과 그 돌연한 죽음이 생각나곤 했던 것이다. 그것은 이상한 감정이었다. 열병과도 같이 나를 달뜨게 혹은 안타깝게 하던 그것은 두려움도 희열도 아닌 그런 감정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열쩍고 우스운 얘기일 뿐이지만, 그러나 당시의 내게 그 감정은 대단한 것이어서, 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계속하여 흡사 무슨 열병처럼 나를 힘들게 하였다. 그 뒤 곧 학교를 그만두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런 두려움 비슷하던 열정에서도 점차 벗어나긴 하였으나, 지금도 「김약국의 딸들」만 보면 오롯이 그 시절의 누이와 그애가 생각나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이와같은 연유로 나는 「김약국의 딸들」을 좋아한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무슨 앙금처럼 남아있는 저 이상한 열정과 왠지모를 두려움,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어떤 안타까움까지를.
「김약국의 딸들」은 소설 읽는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