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조세희의 연작소설에는 개인과 사회, 내용과 형식, 주제와 기법 또는 주관적 감수성과 집단적 의식, 내면성과 객관성, 초월과 참여 등 많은 개념들의 대립적인 관계가 드러나고 있다. 이 상관관계는 두 집단의 대립과 그 표현 방법의 대립을 대응시켜 단순한 세계관을 근본적인 단절로서의 방법론으로 수용시키고 대결의 처참한 상황을 초월에의 의지로 승화시킨다. 즉 방법적인 상관관계를 통해 집단적 실감과 주관적 정서간의 변증법을 구성하고 있는데 그것이 개인과 사회, 사실주의와 반사실주의, 혹은 형식과 내용을 대립시키면서 복합시키는 효과를 얻는다.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
이와 같은 부분에서 우리는 팬지꽃과 폐수, 귀여운 소녀와 그녀의 꽃을 버리는 행위의 대결적인 이미지를 통해 강렬한 시적 호소력을 받게 된다. 더욱이 한 소년의 햇살 속의 낮잠과 꽃을 든 소녀의 모습은 더러운 무허가 주택들의 헐린 가옥들이란 참담한 폐허의 장면과 대결하여 그들의 평화스러운 모습은 좀전의 폭력과 피흘리는 사람들의 모습들과 대결한다. 그리고 이 대결은 `폐수속에` 아마 시커멓고 악취가 물씬 풍기고 있을 폐수 속으로 꽃이 던져짐으로써 이 대결의 건너뛸 수 없는 심연으로의 함몰을 연상하게 된다. 이 두 쌍의 대립은 꽃과 꿈, 폐수와 현실이라는 또 한차례의 상관관계를 맺음으로써 자명한 요소들의 복합적인 심층 구조를 형성한다. 그리하여 지극히 단순하고 자명한 것들이 중층적인 조명을 받음으로써 이 세계와 그 표현이 간명하면서도 간명하게 볼 수 없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