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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시장이 - 특히 영화산업이 -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평하는 주요한 근거는, 요 근래 몇 년 동안 1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작 영화들이 여러 편 출시되어 국민들의 마음에 각인되었다는 점과, 중국?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을 보고난 후의 자신감이다. 하지만 그렇게 낙관할 만한 문화적 성숙도를 과연 우리나라는 가지고 있는 것인지, 불과 몇 년 동안의 몇몇 화려한 성공을 거둔 소수의 빛나는 사례에 눈이 멀어 그 뒤의 음지에서 아직도 배고픔에 시달리며 영화 그리고 기타 장르의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버텨 오고 있는 많은 이들을 그 새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불과 20년 전, 본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는 ‘방화’라는 장르가 자리잡고 있었다. 외국에서 만든 영화만이 ‘영화’라는 장르의 예술로 불리워졌던,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영화의 질적 수준을 스스로 깔보며 ‘방화’라는 또다른 하위문화로 분류했던 쓰라린 시기가 아직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랬던 우리의 영화산업은, 물론 많은 영화인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그간 성숙했던 문화적 토양을 기반으로 하여 발전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의 가운데 스크린 쿼터제가 있었고, 그를 통해 많은 배고픈 영화인들은 굶주림을 면하면서 우리 영화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올드보이’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유수한 대작이 생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