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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이토스의 logos의 개념은 묘하고 난해하다. “내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logos에 귀 기울일지니라”고 그가 말하는데, 이 경우에 있어서 logos는 ‘설명’이니 또는 ‘서술’이니 하는 그 일반적인 의미들 중의 한 가지를 가진 것같이 보이긴 하지만, 그것은 그걸 말하는 사람에게서 이미 독립하여 존재하게 되어 그 둘이, 즉 그가 하는 말과 logos가 대비될 수 있게 된다. 이 logos는 영구히 참되며, 모든 것은 이에 따라서 일어나게 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수수께끼 식으로 말을 했는데, 이에는 두 가지 주된 까닭이 있어서였다고 희랍인들은 말합니다. 첫째로 그 자신의 기질이 그로 하여금 장엄하고 역설적인 언어를 즐기게끔 만들었다. 그는 우리에게 “좋음과 나쁨이 하나이다.”와 같은 직선적인 역설을 말해 줄 수도 있고 또는 “시간은 장기를 두는 아이이니 왕국은 아이의 것이다.”와 같은 매혹적이면서도 애를 태우는 비유적 표현을 해 줄 수도 있다. 둘째로 그에게 있어서 사고가 유난히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이오니아적인 우주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도 없었거니와, 또한 생명과 사고를 물질적인 원진의 틀 속에 가두어 둔다는 것이 쉽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명과 사고는 얼마가지 않아 곧 그 틀을 깨뜨리게끔 되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즉, 정신과 물질은 같지 않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에 있어서는 운동과 변화만이 실재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파르메니데스에게 있어서는 운동은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실재 전체가 하나의 단일하고 부동. 불변인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했습니다.낱말의 논리에 관해 의식적으로 반성을 한 최초의 사람인 파르메니데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사물이 esti(is 1.있다 2...[이]다)라고 말함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만을 의미할 수 있고 또 의미해야만 되는 것같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