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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TV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해 산요에서 기술을 배워왔는데, 이제는 거꾸로 그 산요에서 삼성의 기술과 경영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온 것이었다. 말하자면 선생이 제자에게 배우기 위해 머리를 숙인 셈이다. 다분히 상징적인 일이긴 하지만, 일본의 기업들이 바야흐로 삼성과 이건희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 아닐 수 없는 일대 사건이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2003년 1월 19일 발표한 [2003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50]에서 삼성전자를 42위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지도자 50]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32위로 뽑았다. 이는 국내 기업과 기업인을 통틀어 최초의 일이다. 특히 전자전기 부문만 따로 뽑은 기업순위에서 삼성전자는 필립스, 노키아, 모토로라 등을 제치고 미국의 GE와 독일 지멘스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랐다.
◎ 이건희, 그의 시선은 10년 후를 향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런 대역전극에 숨어 있는 공로자들로는 윤종용 부회장과 이윤우 반도체 총괄 사장, 진대제 디지털 미디어 총괄사장, 디지털 어플라이언스의 한용외 사장, 삼성의 휴대전화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정보통신 총괄본부의 이기태 사장 등과 구조조정본부의 이학수 사장 등 탁월한 경영자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최고의 공로자는 역시 이건희 회장이다. 이건희 회장은 반도체의 개발방식, 휴대폰의 통화(SEND) 버튼과 종료(END) 버튼의 위치 지정 같은 디자인 문제에서부터 성과에 따라 연봉의 최고 50%를 나눠주는 프로핏 셰어링(profit sharing) 등의 실적급, 스톡 옵션 등 다양한 아이디어와 혁신경영으로 삼성전자를 세계의 일류기업으로 거듭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왠지 어눌해보이고, 말도 느리며 걸음걸이도 느리다. 표정에도 변화가 없다. 은둔적이고 과묵하며 사색적이다. 그러나 그는 사색을 통해 남들이 미처 못 본 것을 생각하게 한다. 위기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 조기 진단하고 위기의식을 불러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