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흑사병은 1347년에서 1351년 사이에 가장 심각했던 유행병으로 유럽의 정치·종교, 사회·경제, 문화에 강타하였다. 그 이후에도 300여 년 동안 흑사병은 주기적으로 유럽을 강타하였다. 하지만 14세기 유럽사회의 위기에 흑사병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아니면 다른 요인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14세기흑사병과그것이유럽사회에미친영향
본문/내용
에볼라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은 열병과 함께 피부 아래 혈관이 터지면서 자국이 발생하는데 이런 현상과 에볼라바이러스 감염자들에게 큰 고통을 주는 내부기관의 액화(液化) 현상도 중세 흑사병 환자들의 검시과정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흑사병 증상과 유사하다고 연구진은 주장했다. 이와 함께 연구진은 중세 사람들이 흑사병 퇴치를 위해 감염자들을 40여일 동안격리한 조치도 흑사병의 원인이 쥐벼룩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쥐의 이동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쥐벼룩이 흑사병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40여일의 격리 기간도 흑사병의 원인이 바이러스성 질병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주장했다. 이렇듯 흑사병의 원인에 대하여 많은 의견들이 있다. 하지만 흑사병이 사회와 개인들에게까지 커다란 희생을 가져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흑사병은 18세기가 되어서야 서서히 약화된다.
Ⅲ. 유럽의 전개양상
질병은 한번 나타나서는 차례로 극성을 부리기도 하고 완화되기도 하다가 때로 사라져 버린다. 사실 질병이 심했다가 완화되었다가 하는 것은 인류가 서로 가로막힌 상태에서 마치 다른 별에 사…
참고문헌
• 공동철,『전염병은 없다』, (서울:이회), PP26~52
• 서양중세사학회, 『서양 중세사 강의』, (서울:느티나무, 2003), PP368~ 391
• 배영수 외, 『개정판 서양사 강의』, (서울:한울,2003)
• 아노카렌, 『전염병의 문화사』, 권복규譯(서울:싸이언스북스,2001), PP105~124
• 알베르 카뮈, 『페스트』, 김화영譯
• 유희수. <14세기 중엽 페스트가 죽음과 저승의 이미지에 끼친 영향>. <<사총>> 46 (1997): 279-298.
• 윌리엄H.맥닐,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허정譯(서울:한울,1992), PP171~225
• 자크 르 고프, 『서양 중세 문명』, 유희수譯(서울:문학과지성사,2003)
• 정운용. <영국장원제도의 붕괴와 흑사병>. <<외대학보>>. 2 (1959. 12).
• 프레더릭F. 카트라이트. 마이클 비드스, 『질병의 역사』,김훈譯(서울: 가람기획,2001) PP51~86
•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Ⅰ-1 』, 주경철譯(서울: 까치,1999)
• 필립 지글러, 『흑사병』, 한은정譯(서울:한길사,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