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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켈트족의 사회풍습
켈트족이 부족의 연합이었다고는 하나 카이사르 시대에는 대체로 씨족의 유제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들은 카이사르 시대에도 군혼(군혼)생활을 하고 있을만큼 미개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F.엥겔스 저, 위의 책 p181
당시 켈트인들의 군혼을 카이사르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10인 또는 12인씩, 특히 형제나 부자 사이에 공동의 아내가 있었고, 거기에서 태어난 아기는 처녀로서 최초로 잠자리를 같이한 사람의 자식으로 간주되었다. 카이사르 저, 위의 책 p169
이렇듯 카이사르 시대의 대부분의 켈트족은 씨족문화의 유제가 강하게 남아 있었을것이다. 켈트족의 결혼제도는 11세기 까지도 대우혼의 관습이 강하게 남아 있었으며 처녀의 정조관념은 게르만족과는 달리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가부장제가 성립되기 이전의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상대적으로 높았고 사회구조는 매우 개방적이라서 유산의 상속에도 적자와 서자의 구별이 없었다. F.엥겔스 저, 위의 책 p180
하지만 가족에게 있
어 가부장의 위치는 절대적인 것이어서 가부장은 자식과 아내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었고 …
참고문헌
브라이언 페이건 저, 최몽룡 역, <<인류의 선사시대>>, 을유문화사
카이사르 저, 박광순 역,<<갈리아 전기>>, 범우사
F.엥겔스 저, 김대웅 역,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아침
임웅, <고게르만 촌락공동체의 경제적 성격-마르크공동체를 중심으로>,<<사총>> 제31집
E.A Thompson 저, 김양수 역, <초기 게르마니아의 노예제>, <<서양 고전, 고대 경제와 노 예제>>, 고려대학원 서양고대사 연구실 편역, 법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