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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세기]
청자와 백자가 탄생되는 시기지만, 역시 토기가 더 널리 쓰이고 있었음을 지금까지 남아있는 다양한 고려도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도기의 형태가 청자의 형태와 같은 점으로 미루어, 이때에 청자도 만들어질 기운이 무르익었음을 시사해 준다. 한편 이미 청자가 만들어지고 있었을 때, 토기도 여전히 제작되고 있었으리라 추측된다. 청자는 993년에 만들어진 순화사년명(淳化四年銘)항아리가 지금까지 전한다. 이 항아리는 고려태조의 태묘(太廟)에서 제향(祭享)때 쓰이는 그릇으로 만든 것이다.
이 항아리의 유약은 담록조의 황회색계(黃灰色系)여서 청자로 보았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이것은 백자로 보아야 좋다는 주장이 있다. 즉 태토(胎土)가 회백색의 자질(瓷質)에 가까워서 불안전 백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만들어진 연대로 보아, 당말 오대의 정요백자의 영향도 충분히 고려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무렵에 청자도 상당히 발달하였을 것으로 추정할 자료도 있다.
11세기 초 거란의 성종왕 여경릉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음각문편이 바로 그것이다. 11세기 초 외국 왕실에 선물로 청자를 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은 벌써 청자의 수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