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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자료]
부끄러운20세기의역사

본문/내용

1.2 일제시기 만석꾼의 ‘돈과 빽’ 일제시기 총독부 권력은, 외형적으로는 근대 국가권력(기구)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관료는 국민의 심부름꾼’ 하는 식의 ‘공복론’이 표방되었으며, ‘돈과 빽’의 탈법적 비공식적 상호교환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일제하에 있었던 각종의 독직사건(1929년 조선총독 독직사건)들은 이런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국가권력과 사회권력은 당연히 공공성이 부재하였으며, 또 지극히 왜곡된 형태로 ‘돈과 빽’의 상호교환이 부단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제하에서 관례화된 ‘돈과 빽’의 상호교환 메카니즘 가운데서도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같은 교환이 이른바 ‘유지정치’, 특히 ‘관료-유지 지배체제’를 매개로 형성 발전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유지정치 과정에서 일상화된 ‘뒷거래 정치(로비와 진정, 뇌물과 향응)’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수 있다. 특별히 이런 관행이 만연했던 것은 공식부문의 정치(면협의회, 학교평의회 등 각종의 공직기구)가 제한된 가운데 비공식부문의 정치가 기형적으로 관행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실을 만석꾼의 ‘유지정치’라는데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일제시기 대부분의 조선인 만석꾼은 엄청난 가산을 대대로 물려받은 거부(헌양반)들이 아니라 구한말의 사회변동 과정에서 새롭게 출현한 이른바 ‘당대 만석’(새양반)들이었다. 즉 개항과 더불어 쌀, 콩, 면화의 일본 수출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상업적 농업과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누구에게나 잘만 하면 한밑천 잡을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었다. 더구나 신분제가 해체되고 국가기강이 해이해지면서, ‘돈만 좀 있고, 줄만 잘 서면’ 시골 군수 자리 하나 따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구한말은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던 역사의 격변기였다. (1). 1930년말 현재 100정보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충남지역 대지주는 대략 89명이었는데 이들 가…
(1). 1930년말 현재 100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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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 : kzxp***
Date : 2015-11-09
FileNo : 1610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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