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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공파 문중의 성립
‘의령남씨 충장공파 종계’는 의령남씨 17세이자 충장공의 현손인 의안군(의안군) 익화(1667~1733)가 중심이 되어 처음 설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1988년에 만들어진 「의령남씨 충장공파 종회규약」의 서론과 재실인 ‘수종재(수종재)에 걸린 ’기적기‘(기적기)’에 의하면, 의안군이 대종계(대종계)를 만든지 270년이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충장공파 문중은 1720년을 전후해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의안군은 비슷한 시기(1721년)에 『충장공유사』를 편집·발간하였는데, 이것이 종계의 결성과 관련이 있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충장공파 종계가 성립한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소문중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현재 소종의 분포를 놓고 볼 때 시기적으로 가장 빠른 것은 충장공의 3남 두기를 파조로 하는 ‘승지공파(승지공파)이지만, 이것 역시 초기 자료는 찾을 수가 없다. 기원이 확인되는 대표적인 소문중으로는 ’수사공파(수사공파)‘를 들 수 있다. 수사공은 두기의 손자 윤(16세. 1643~1711)을 가리키는데, 윤의 현손 태수(태수, 2자)와 필수(필수, 3자)대에 와서 결성되었다.
수사공파의 분화 이후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