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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제 말의 수탈과 억압은 빼앗긴 자, 쫓기는 자로서의 패배의식을 심화함으로써 민족적 열등감을 부채질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게 한 것도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8·15 해방은 민족사의 일대전기가 됐음은 물론 시사에서도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해방이 주체적·능동적 노력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연합국의 승리라는 타율적인 힘에 의존한 것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강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로 민족적인 자주적 역량이 부족하였고, 따라서 극심한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좌우익의 격심한 갈등과 대립은 삼팔선을 경계로 한 소련과 미국의 진출과 더불어 극에 달하였으며, 끝내는 식민지 체험 이상으로 비극적 상황인 남북분단이라는 민족분열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혼란은 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술·사상·종교·예술에 이르기까지 파급되어 일대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계급주의 문학이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여 문단을 정치적인 격전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해방 얼마 후 간행된 <해방기념시집>에는 벌써 낯선 시어들이 대거 등장함으로써 문단이 정치 상황적인 난기류에 휩싸이기 시작했음을 예고해 준다. 이 시기의 시단을 이끌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해방 전에 데뷔한 시인들이었다. 8·15부터 6·25 전까지를 해방공간이라 일컬을 때, 이 시기의 특징은 식민지체험의 연장선상에서 이를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신진시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과도기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시기엔 일제 말에 간행되지 못했던 시와 시집들이 빛을 보기 시작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기 시…
해방 얼마 후 간행된 <해방기념시집>에는 벌써 낯선 시어들이 대거 등장함으로써 문단이 정치 상황적인 난기류에 휩싸이기 시작했음을 예고해 준다. 이 시기의 시단을 이끌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해방 전에 데뷔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