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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르느와르는 당시 프랑스의 많은 최고의 재능 있는 사람들, 그러나 그에 필적할 만한 사람들 가운데세도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한 국가적 융성기 동안의 창조적인 영화 예술가 집단과 그들에 의해 제작된 탁월한 영화들은 영향력 있는 것이었고 지금까지도 기억할 만한 것으로 남아 있다.
12. 영국 전시의 세미-다큐멘터리와 전후의 코미디 (1939-1955)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영국 영화의 상황은 과거와 다름없이 여전했다. 영화산업은 미국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우리가 미국 영화산업을 영화가 만들어지는 장소 이름을 따서 `할리우드`라고 부르는 것처럼, 영국인들은 런던에 본사를 두고 배급을 담당하는 곳을 `워다우어 거리(Wardour Street)`라고 부른다. 배급되고 상영되는 오락영화들은 대부분 미국영화였다.
영국 장편영화들은 구별이 될 만한 특징과 어떤 독특한 국가적 전통이 부족하였고, 지식인들은 영화에 완전히 무관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록영화는 1930년대 영국에서 발전했다. 영국 기록영화운동의 기초자이며 지도자는 존 그리어슨이었다. 이들 짧은 사실영화들은 영화를 사회적이며 과학적인 조사연구의 도구로 자리잡게 하였다. 기록영화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예술의 사회적 유용성이라는 1930년대의 이상에도 맞아 떨어졌다. 1930년대의 영국 기록영화는 대중의 욕구와 국가적인 관심의 많은 측면들이 관계된 영화들을 제작하였다. 전쟁이라는 극적 사건에 의해 불타오른 새로운 영화형식이 등장하였는데, 이 장편이면서 구조상 이야기체인 이 영화들은 세미-다큐멘터리라 불리어진다. 그 용어는 부분적으로는 허구이고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며 어떤 부분은 연기된 것이고 어떤 부분은 사실이지만, 언제나 시나리오 작가의 상상력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사건으로부터 시작하는 전시의 실제 사건의 기록이라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