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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약력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성장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가시밭길을 걸어온 그 흔적을 『신가정』(신가정)지 1934년 4월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 게재된 「소설가 이태준씨 앨범」 의 글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우리 융희 3년이요, 서력으로는 1909년, 다시 한말지사 이문교씨는 가족들을 데리고 아라사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그가 마침내 외국에서 불귀의 객이 되자 그 안해 안씨는 어린 자녀를 안고 다시 두만강을 건너 고국으로 들어와 지금 새로 된 항구 나진(나진)을 거쳐 이진이란 곳에 이르니 때에 그 안씨의 품에 안긴 아들의 나이 여섯 살이었다. 거거서 가난한 살림살이를 세 여름 세 겨울! 겨우 아들의 나이 아홉 살 나자 그 어머니 안씨마저 망부의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나니 의지할 곳 없는 지사의 후예 두 누이 한 아들은 장차 어디로 가야 할고.
이와 같은 상황 속에 이태준은 성장했고, 철이 들면서 그는 마을 서당에 다니면서 한자를 익히면서 『논어』의 문리를 텄던 것이다. 당시(당시)를 모방하여 글을 지어 보았고 문학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도 어려서의 일인 것으로 여겨진다. 1912년 겨울, 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