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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유럽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 `분권주의(分權主義)`와 `통합주의(統合主義)`다. 먼저 분권주의는 지역분권과 자치·분권화를 추구하며 대중주의(大衆主義)와 맥(脈)을 같이한다. 북아일랜드, 북부 이탈리아, 스페인 바스크 지역, 프랑스 코르시카 등에서 나타나는 독립주의(獨立主義) 경향이 분권주의의 좋은 예이다. 이에 비해 독일 연방주의는 분권주의가 정치적으로 성숙돼 정착된 사례에 해당한다. 반면 프랑스에서 발전한 강력한 통합주의는 오늘날 유럽통합의 모체가 되고 있다. 분권주의와 달리 통합주의는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바탕으로 하는게 특징이다.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 Steel Community, ECSC)`에서 시작돼 `경제·통화 통합(Economic & Monetary Union, EMU)`의 마지막 단계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유럽통합의 진전과정이 이를 말해준다.
이렇듯 기능주의적(機能主義的) 통합방식의 첫 출발은 1950년 5월 9일, 당시 프랑스의 외무장관 로베르 슈망(Robert Shuman)이 이른바 `슈망플랜`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슈망은 `서유럽의 석탄과 철강자원을 모든 관련국가들과 새로운 초국가적(超國家的) 정부(政府)가 공동행동을 취함으로써 공동으로 출자되고 관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중공업분야에서 모든 관세를 점진적으로 철폐하려는 목적을 포함하고 있었고, 궁극적으로 정치공동체(政治共同體)로 향하는 첫 단계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슈망플랜은 석탄과 철강생산의 단순한 …
그런 제안이 나오기는 했지만, 영국은 여전히 무관심했다. 영국은 초국가적 정부의 원칙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었다. 영국은 노동당이나 보수당 모두 유럽대륙국가들의 초국가적 공동체 구성에 참여할 의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