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Ⅳ. 사회 과학적 역사
역사적 객관성에 대한 주장은 직업으로서의 전문 역사학이 자리를 잡은 1950~60년대에 한꺼번에 나타났다. 이 시기에 전문 역사학은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성장하였고 19세기 후반에 누렸던 것과 같은 사회적·재정적 위치를 다시 찾았다. 1968년 독일 역사가들은 1930~40년대 독일의 자유주의-민족주의적 역사 서술의 옛전통을 저해한 주관성의 위험을 사회학 이론 및 방법을 통해서 벗어나려고 시도하였다. 그들은 개인의 전기를 다루기 보다는 주로 평균·집단·세계적 추세의 역사로서 과거 민중의 역사를 기술하는데 힘을 쏟았다. 같은 시기 영국에서 또한 에드워드 카 등의 역사가들은 역사학이 사회과학과 함께 하기를 주장했다. 사회과학은 역사가들에게 대답해야 할 새로운 질문과, 검증해야 할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였으며, 그 결과 역사학을 옛모습과 전혀 다르게 바꾸었다. 아날학파 역사가들은 경제학, 사회학, 특히 지리학과 통계학을 역사학에 적용함으로써 이전보다 훨씬 더 객관적이고 과학직인 역사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회 과학적 역사학은 역사에서 사건·구조·과정 사이에 체계적인 관계가 있다고 가정하였으며 그 학문은 중립적이고 비이념적이었다.
하지만 계량 경제사가들은 대체로 극소수의 협소한 문제들에 관해서만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역사학의 커다란 주제들에 이르면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런 문제들은 계량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과연 과학적 역사학과 전통역사학 사이의 차이가 그렇게 컸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더구나 적절한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더 높고 실제로 확고한 수준의 객관성과 확실성을 이루고 있다는 계량사가들의 주장도 역시 과학 철학에서의 새로운 발전에 의해서 침해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