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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80년 컬러 시대를 열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언론이 5공 시절에는 집권자를 옹호하는데 이용된 것이다. 집권세력은 언론 기본법을 필두로 한 악법으로 방송을 검열하여 언론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KBS사장도 낙하산 인사로 임명되어 졌다. 5공 시절 KBS는 권력의 하수인에 불과 했다. 그런 상황에서 기자들에겐 KBS를 다니는 것이 부끄러움이 될 정도였었다. 언론이 정권의 이용되는 것은 기자, PD 건 모두의 문제였다. 일개 당원들의 전당대회가 대단한 것인 양 포장되어 방송되기도 했다. KBS는 일개 정당의 사유 방송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한 노골적인 편파 방송은 시청료 거부 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사회 민주화의 힘입어 언론도 자유화되었다. 서영훈 사장이 처음으로 정권의 수장이 아닌 사람으로 KBS의 사장이 된 것이다. 그에 따라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광주는 말한다’, ‘정경 유착’, ‘인권 보고’ 등이 방송되어졌다. 기득권 세력을 소재로 한 코미디 프로도 유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된 방송은 3당 합당 이후 다시 암울한 시기를 맞게 된다. 3당 합당으로 정권을 장악한 노태우가 방송을 다시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KBS 직원들은 제작 거부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러한 37일에 걸친 투쟁도 권력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프로그램들은 정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프로그램으로 변질되어 갔다. 한 에로 심야토론에서는 정권에 대한 비판을 하곤 했다. 그러나 3당 합당 후 주제는 변질되어 갔다. 정치·권력에 대한 편파성은 지금도 KBS에서는 문제다. 방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 노조가 건의해 회의가 소집되는 공정 방송 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별 효용이 없다.
한 때, ‘추적 60분’이라는 프로에서 ‘한총련 북에 간 대학생들’ 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내용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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