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3) 대우혼 가족
다소 지속적인 대우관계는 이미 집단혼 하에도, 그 이전시기에도 있었다. 남자는 많은 아내 중에 한 명의 본 아내(그러나 아직 애처라고 할 수는 없다)를 가지고 있었고 그는 그녀에게는 여러 남편 중 가장 중요한 남편이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선교사들의 생각을 혼란시켰는데, 그들은 이것을 때로는 무규율적 아내 공유로 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방종한 간통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관습적 대우관계는 씨족이 발전할수록, 또 서로 결혼할 수 없는 ‘형제들’과 ‘자매들’의 집단이 늘어날수록 더욱 견고해졌다.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결혼을 방지하는 데 끼친 씨족 형성의 영향은 더욱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이로쿠오이 인이나 미개의 낮은 단계에 있는 대부분의 인디언 사이에서 다양한 친족제도에 의한 모든 친척들간-수백 촌에 이르는 친족까지 포함하여-의 결혼이 금지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결혼금지가 이처럼 더욱 복잡하게 됨에 따라 집단혼은 더욱더 불가능하게 되었고 마침내 대우혼으로 대체되었다. 이 단계에서는 한 남자는 한 여자와 산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일부다처제와 비슷하며 남편에게는 때때로 간통을 할 권리가 주어져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일부다처제는 드물었다. 반면 그 남편과 사는 동안 일반적으로 아내의 정조는 엄격히 요구되었으며 간통에는 잔인한 처벌이 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유대는 쌍방이 서로 용이하게 끊을 수 있으며, 헤어지는 경우 자녀들은 여전히 어머니에게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