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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기 전인대
1975년 1월 13일부터 17일까지 제 1차 회의가 북경에서 소집되었는데 출석 대표는 각계의 대표 2,864명으로 그 중에는 54개의 소수민족 대표, 심지어 대만성 출신도 12명이 포함되었다.
주덕 위원장의 개회선언으로 장춘교가 중공 중앙을 대표하여 <헌법 수정에 관한 보고>를, 주은래가 국무원을 대표하여 <정부 공작보고>를 하였다. 1월 14일부터는 앞의 두 보고와 중공 10기 2중전회에서 제의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개정 초안>과 <헌법 수정에 관한 보고>를 토론하였다.
여기에서 수정 통과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신중국 수립 이후 두 번째의 헌법이다. 이것은 1954년 제 1기 전인대에서 첫 번째의 헌법이 통과된 이후 정치·경제·문화와 국제 관계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개정한 것이다. 그리고 모택동의 뜻에 따라 국가 주석제를 폐지하였기 때문에 여기에 상응하는 국가 기구 규정을 정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이 회의는 계속적으로 비림 비공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상황아래 소집된 것이어서 회의상의 보고나 발언, 통과된 결의들이 모두 좌적 성향의 영향을 받았다.
제 4기 전인대는 중공 중앙의 지명을 받아들여 주덕을 전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으로, 동필무·송경령 등 22명을 부위원장으로 선출하였다. 주은래를 국무원 총리로 임명하고, 등소평 등 12명을 국무원 부총리로 임명. 이로서 4인방이 바라던 조각의 꿈은 완전히 살아졌다. 그러나 문화대혁명과 비림 비공을 긍정하였기 때문에 4인방의 영향력은 계속되었다.
제 5기 전인대
1978년 2월 26일부터 3월 5일까지 북경에서 제 5기 전인대를 소집하였는데 출석대표는 3,497명이었다.
화국봉은 국무원을 대표하여 「사회주의 건설의 현대화 강국을 위하여 분투하자」는 정부 공작 보고를 하명서 신시기의…
참고문헌
신승하, 중국당대 40년사(1949~1989), 고려원, 1993.
www.jongang.co.kr, 1993~1998까지 전인대 기사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