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시인은 가르치거나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최상의 경우 유익함과 감미로움을 어우른다.> 문학의 성질이나 기능에 관해서 논의할 경우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위의 명제에서 돌고 도는 것이 보통의 경우이다. 감미로움이나 유익함을 너무 느슨하게 파악하면 논의의 엄밀성이 휘손되지 쉽지만, 반면에 지나치게 옹색하게 규정하면 편혐으로 흘러서 문학작품의 실제와는 동떨어지거나 겉돌게 된다.
문학작품은 인지적 가치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사실을 인지하거나 막연히 알고 있던 사실을 새롭게 재혹인할 때 사람들은 즐거움을 경험하게 된다. 배우는 것이 고통이 되어 있다는 인간 본성의 역전에 우리교육의 위기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당면한 사실인 것이다.
시적 순간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고 하는 곳에는 우리의 망각성향에 도전하는 기억할 만한 요소-작중인물, 대화, 극적 장면, 삽화,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어떤 문학 작품을 읽고서 독서 기억의 잔재로 지닐 수 있는 시적 순간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작품, 아니 전체가 시적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을 우리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체호프 희곡에서 이렇다 할 극적 사건이나 파국없이 생존의 기본적 슬픔이 전개되는 이 작품에서 그 최고 순간은 극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독자나 관객에 따라서 시적 순간도 다르게 나타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안에서의 객관적 상관물로서 통찰의 게기만 마련해 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지의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시적 인지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작중인물의 불행과 어려움의 자의식이 사실성을 획득하게 된다. 작중인물의 상황에 대한 엄살로 받아들일 수도 없게 되고, 그렇다고 허풍으로 받아들일 수는 더더욱 없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리얼리티의 획득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문학작품은 독자에게 경험에 대한 새롭고 도전적인 관점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