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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러시아에서 꽃피어서, 1930년에 정치적 이유로 탄압을 당했던 문학비평의 알파에게, ‘포르마리즘’ 이라는 명칭이 최초로 주어졌었다. 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졌던 참가자는 Boris Eichenbaum, Vitor Shklovsky, Roman Jakobson, Boris Tomasjevsky, Juri Tynyanov 와 같은 언어학자나 문학사가들인데, 그 2대 거점은 주로 언어학자로 구성된 ‘ 모스크바 언어학회 ’(1915년 설립) 및 주로 문학사가로 구성된 ‘뻬뜨로그라드 시적언어연구회’ (1916년 설립) 였다. 러시아어로 후자의 그룹명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오뽀야즈’는 포르마리즘 운동 전반의 호칭이 되었다. 초기에서의 포르마리스트의 학설은, 「시적 언어이론의 연구」라는 이름에서 행해진 빼뜨로그라드에서의 오뽀야즈의 심포지움 (1916년, 1917년에 확대됨. 나중에 Osip Brik, Eichenbaum, Shkolovsky의 새로운 논문을 첨가해서, 1919년에 『시학』Poetics 으로 간행됨) 및 Roman Jakobson의 『러시아 근대시』(1921년)에 발표되어 있다.
초기의 포르마리즘은, 상징주의 및 실용될 수 있는 코뮤니케이션의 도구로서의 형식에 대한 상징주의자적 관심을 기본원리로 해서 구축되었었다. 즉, 자립적이고 자기표현적이며, 언어외적 리듬, 연상, 암시를 이용해서 언어를 보통의 「일상적인」의미영역을 넘어서까지 「늘려나갈」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이다. 이러한 관심에서, 비평의 경우에도 문학적인 언어를 작동시키는 기술에 열심히 주목하게 되고, 또 이 기술들을 「일상적인」언어의 양식과 구별…
이리하여, 적대자들은 오뽀야즈의 사람들을 경멸해서 「포르마리스트」라고 불렀었지마는, 그들 자신은 「객관적 사실」에게로의 강한 관심을 선언함으로써, 「명확히 논하는 자」라는 명칭을 택하고 자기들의 탐구법을 문학의 「형태론적 연구」라고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T. 호옥스, 구조주의와 기호학, 신성출판사,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