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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프러시아의 작센 주 뢰켄에서 프로테스탄트의 목사인 칼 루드비히 니체의 장남으로 1884년 10월 15일에 태어났다. 어머니다ㅓ, 할머니도 목사의 딸이었다. 후일 기독교 에 대한 가장 격력한 비판자가 된 티체가 가장 독실한 기독교 가정 출신이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4세때 아버지가 뇌연화증으로 사망하고 아듬해에 니체 일가는 나움부르크로 이사했다.
14때데 포르타 고등학교에 입학앴는데, 이학교는 노발리스, 슐레겔 형제, 피히테, 랑케 등을 배출한 명문고로서 엄격한 기숙사 생활과 인문주의 교육으로 알려져 있다.
니체는 이때부터 문학과 음악 등에 깊은 관심을 보여 ‘게르마티아’란 클럽을 조직하고 문학과 예술을 연구하는 동인 활동을 벌였다.
1864년, 21세때 그는 본 대학에 입학했다. 어머니는 신학을 전공하여ㅛ 목사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니체는 그리스어, 라틴어를 언아학적 입장에서 연구하는 고전문한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고전문한학을 선택하는 데는 당시으 ㅣ이방면의 저명한 교수이던 리츨르 교수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다음해에는 리츨르 교수가 라치프치히 대학으로 옮겨가자, 니체도 교수를 따라 라이프찌히 대학으로 옮겼다. 이 대학에서 4년 동안 니체는 고전문헌학을 연구했으며, 재학중의 업적도 우수하여 리츨르 교수는 무시험으로 학위를 수여했을 정도였다. 또한 리츨르 교수의 추천으로 니체는 1867년, 24세의 약관으로 스위스 바젤 대학의 객원교수가 되었고 다음해에는 정교수로 임명되었다. 당시으 ㅣ아카데미즘의 풍토로 보아 니체의 데뷔는 이계적인 일이었다.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긴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늦은 강ㄹ, 니체는 우연히 고서점에서 쇼펜하우러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발견하고 이때부터 쇼펜하워에게 심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