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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실된 자아와 주변으로서의 주체
자아와 주체에 관한 이야기는 90년대 초반 많은 이론적 논쟁에서 핵심이 되었던 부분이다.
cogito를 버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며 그 이론적인 작업도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조직활동등의 측면에서 cogito의 맹위는 좀처럼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역자가 어떤 단어를 자아와 주체로 번역했는 지는 아쉽게도 나와 있지 않다. 나의 이해로는 자아는
id-ego-superego에서의 ego를 번역한 것 같고 주체는 아마도 subject인 것 같다.
라깡의 다음의 말을 기억할 것이다.
“ 나는 생각하는 곳에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생각한다.”
여기서 라깡의 주체개념을 자세히 서술할 생각은 없다.(실은 지금 책이 없어서 그럴 능력이 없다)
요지만 말하자면 코기토를 버린 라깡은 상징적 세계로 들어갔다. 가따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코기토를 버림으로서 열렸던 문을 상징계의 자물쇠로 닫아버린 것이다. 따라서 주체는 또 한 번 갖히게 된다.
가따리의 주체개념을 알기위해서 다시 욕망하는 기계로 돌아가 보자.
기계들은 무의식의 대지위에 있다. 이것들은 생산하고 등록하고 소비한다. 즉, 무의식의 대지위에서 에너지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기계는 이 에너지의 흐름을 절단하고 그 절단은 그 다음의 흐름이 있게 한다. 이러한 흐름의 순환속에서 주체는 탄생한다. 즉, 욕망하는 기계의 작용의 현실의 한 시점 파악되는 것이 주체인 것이다. 따라서, <주체는 중심에 있지 않고 기계가 중심에 있다. 주체는 가장자리에 있으며, 고정된 자기동일성을 가지지 못하며, 항상 중심에서 벗어나 있으며, 자기가 지나가는 상태들에 의하여 끌어내어진다.>p40 그리고 이 끌어당겨지는 힘에 의해서 자아가 나타난다. 즉, 기계의 주위를 돌고 있는 주체가 그 원심력에 의해서 끌어당겨지는 그 원의 중심에 자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