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위천공단의 추진은 1989년부터 시작되었으나, 1996년부터 두 지역의 의견표명이 더 활발해지면서, 한편에서는 공단조성 추진을, 다른 한편에서는 반대를 위한 본격적인 조직을 결성하여 활동하게 된다. 1996년 12월말에 당정협의에서 공단지정방침이 결정되어 수질개선대책과 위천공단 지정을 다음해 1월에 발표하겠다는 입장을 정리하자 부산지역에서는 부산시청을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과 대규모 시민결의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한편 1997년 5월19일 대구시장은 위천공단이 국가공단으로 지정되지 못한다면 지방공단으로 전환하여 추진할 것이며, 수질개선계획은 일부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였고, 이는 다시 부산지역의 반발을 불러 일으켜서 양측의 긴장국면이 다시 조성되기도 하였다.
3. 위천공단문제 전개와 내용
위천공단 조성사업이 처음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대구염색공단 입주업체를 제외한 260여 염색업체들이 환경오염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2의 염색공단으로 현재 위천공단예정지를 지목하면서 부터였다(조선일보, 1996.11.25). 이후 1991년 경상북도와 달성상공회의소가 공장용지난이 심각한 섬유 염색 기계업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