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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는 궁녀복으로 갈아입고 건청궁 곤녕각으로 피신해 있었는데, 일본 무사들이 그녀의 온몸을 칼로 난도질했고, 시해한 후 증거를 없애기 위해 그 시신을 근처의 녹산으로 옮긴 후 태워버렸다. 그리고 남은 뼈 조각은 근처 향원정에 던져버렸다. 일설에는 연못에 던지지 않고 근처에 묻었다고도 한다.
명성황후는 이처럼 참혹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참변이 일어난 후 그녀는 일본인들에 의해 폐서인되었으나 곧 고종에 의해 이해 10월 다시 복위되었다.
고종은 1897년 11월 시신 없는 국장을 거행했다. 또 이 해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선포하고 황제라 칭했기에 민왕후를 명성태황후로 추존했다. 끝내 유골은 찾을 수 없었지만 고종은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홍릉에 명성황후를 안장하였다. 이후 홍릉은 현재 경기도 남양주군 미금면 금곡리로 이장되었는데 현재 시신 없이 고종과 함께 합장되어 있다.
3) 두 세력의 시각 차이 - 대외정책 중심으로
(1) 흥선대원군의 대외 정책
흥선 대원군은 보통 쇄국론자, 척화론자로 불린다. 하지만 우선 쇄국이란 용어 자체가 흥선 대원군이 정책을 펼쳐 가던 시기에 붙여진 것이 아니라 뒤에 일본인…
참고문헌
• 김우상, 신한국책략, 1998
• 김윤수, 탐국한국사, 2001
• 윤정란, 조선의 왕비, 차림,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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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문형,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 지식산업사, 2001
• 최문형, 한국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 지식산업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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