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성심성의껏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참고하셔서 좋은 성적 받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제주도의 4.3사건이 발생하기 전 제주도 상황과 관련해서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궁지에 몰리자 최후의 결전지를 제주도로 선택하고 병참∙요새화 하는 과정과, 그에 따라 발생하는 강제 징병과 수탈 등에 대한 역사현장 보고서입니다.
제주도답사보고서
목차/차례
- 1. 들어가며
- 2. 해방전∙후 제주도의 상황
- 3. 강제 징병∙징용, 그리고 수탈
- 4. 일본군의 제주도 요새화 작전
- 5. 나 오 며
- ∙ 참고자료
본문/내용
2. 해방전·후 제주도의 상황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제주도민에게는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문자그대로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했다. 일본제국주의는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군에게 계속 밀리게 되자 제주도를 일본 본토사수를 위한 ‘대미결전의 최후 보루’로 설정했다. 이 고도의 작전계획에 따라 일제는 종전 직전까지 관동군을 비롯해 7만 가량의 일본군을 만주와 일본 등지에서 제주도로 이동 배치했다. 더욱이 ‘결7호(抉7號) 작전’으로 명명된 저들의 작전계획과 미군이 제주도에 상륙했을 때의 일본군 가상배치도를 보면, 7만 대군을 거느린 제주도 주둔 일본군 사령부는 상륙미군에 최후까지 저항하기 위해 유격전을 준비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총독부는 종전 직전 제주도 주민 5만 명을 남한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수송과정의 잦은 미군기 공습으로 일단 중단하고, 미군이 섬에 상륙하게 되면 주민들을 산중으로 데리고 가서 군과 행동을 같이하도록 방침을 바꾸었다. 그것은 20여 만 명의 제주도민을 산중으로 끌고 가 최후 결전의 소모품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참고문헌
∙ 제주도, 「제주 항일 독립운동사」, 1996.
∙ 제민일보 4·3취재반, 「4·3은 말한다 Ⅰ」, 전예원,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