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 통일전선으로서의 임시정부
① 임시정부 - 통일전선의 건립에 크게 노력
김원봉 등의 좌익세력과는 1942년 임시정부의 개편 때 본격적인 좌우합작을 이루기 시작했다. 또한 독립동맹과의 합작을 모색해 1941년에 광복군을 결성한 뒤, 1942년 조선의용대 중경 잔류파가 가담을 하기에 이르렀다.
② 변화된 임시정부의 건국강령 및 정책
토지 국유화 및 대생산기관의 국유화, 8시간 노동제, 파업의 자유, 의무교육, 면비(무료)교육 등이 주요 슬로건으로 등장. 보수적인 임시정부가 사회주의적 요소를 포함한 대단히 진보적인 정책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해방 당시 임시정부의 정책은 중국본토의 중국공산당 지역에서 활동하던 화북조선독립동맹, 만주 지역의 조국광복회 등의 강령과 큰 차이가 없었고 2차대전 와중에 연합국으로부터 교전단체로 승인받으려는 등 국제적 지위 향상에도 노력했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 때문에 공식승인받지 못하였다. 미국은 임시정부의 대표성을 부인했고 임시정부를 승인할 경우 나타날 소련의 반응은 물론, 중국의 영향력 증가도 우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③ 임시정부가 가진 국제적 지위의 한계 - 광복군 9개 준승
광복군 9개 준승에 따르면 당시 광복군의 작전지휘권은 중국정부에게 있었다. 그러나 이후 임시정부의 끈질긴 외교적 협상을 통해 1945년 중국 정부로부터 작전지휘권을 얻어내게 된다. 비록 죽음을 전제한 소수의 광복군이었지만 조선을 해방시키는 전쟁에 참전하여 피를 흘린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3) 해방 후의 임시정부
① 정부 자격으로서의 환국이 좌절
해방 이후 남측의 유일한 정부는 미군정이었다. 미군정의 반공노선이 적극화되면서 해방 후의 정치상황은 민족 대 반민족의 대립구도에서 좌우대립 구도로 변화되었다.